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주말. 쓸데 없는 약속들에 선배들 결혼을 그냥 지나쳤네요. 이심이랑 담이랑 결혼 축하합니다... 총회. 미국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네요. 군바리 시절을 빼면 항상 참석했었는데 습관이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내 이십 대의 사랑 혹은 삶에 안위를 혹은 위안을 건냈던 영화였습니다. 차라리 "비포 선라이즈"에서 선착장을 찾았더라면 하는 미련과 함께... 엘리자베스 슈의 그 징징대는 목소리에 젖어 몽롱해하며... 그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립니다. 바다의 섬에 집착하면서 그 섬들을 잇는 다리 혹은 지나는 배에 지나치게 매몰찼던 영화. 혹은 그 매몰참을 조롱했던 영화.

그 라스베가스를 떠나왔습니다. 명목상은 컨퍼런스 참석, 실질적으로는 관광을 목적으로... 스스로도 목적이 뭔지 애매하던 차에 LA 공항의 입국 심사인이 친절하게도 "On Business"라고 규정해주더군요. 안가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밀어 넣어 갔다 왔습니다. "너 비행기 공포증있지?"라는 팀장의 말에 "네"라고 말하기가 어렵더군요... 아 베르캄프여... 하여간 그렇게 8일 동안 비행기를 6번이나 탔습니다...

두살 어린 아줌마하고 같이 같는데... 뭐 이 아줌마 손잡고 뒤만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줌마인지라... 많이 과장해서 불륜에 빠지지 않으려는 자기 절제와 함께... 종종 신혼부부로 오해를 받기도 하면서... 다음엔 차라리 처녀랑 보내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아줌마는 업무에 바빠서... 저는 무심해서... 별다른 준비 없이 호텔 주소만을 챙긴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

출발은 왜 도심 한복판에 면세점이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의 해소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귀여운 아줌마가 이것 저것 참 많이도 샀더군요... 명품 혹은 비싼 물건에 대한 나름대로의 궁금증을 물었봤는데 이 아줌마 왈 솔직 담백하게 "그냥 자랑하려고 산다"

LA를 경우해서 라스베가스. LA 공항에서 귀여운 아줌마가 20 달러를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강탈당했습니다. 11월의 라스베가스는 서울의 10월 초 날씨 같더군요. 올해가 약간 더 쌀쌀한 편이라지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배경은 라스베가스의 구시가지 "다운타운"이었는데 저는 계속 라스베가스 공항에서 가까운 "스트립"이라고 불리는 신시가지에 있었습니다.

숙소는 "스트립"에서 10 분 거리에 있는 팬션 형태의 호텔이었습니다. 거실이 딸린 방이 하루에 약 100 불... 바른 생활을 위해 아줌마랑 같은 방을 쓸 수 없어서 방을 따로 따로 잡았습니다. 보통 2~4 인이 쓸 수 있는 방을 혼자서 사용했으니 심히 돈지랄이지요...

"스트립" 거리는 1 km 가 넘는 대로변의 양쪽에 많은 호텔들이 자리잡고 있고, 전세계에서 몇 손가락안에 든다는 이 호텔들 자체가 관광객의 구경거리인 묘한 동네였습니다. 여전히 여기 저기서 호텔들을 짓는 공사는 계속되고... 호텔들은 보물섬, 알라딘, 이집트, 파리, 뉴욕, 고대 로마 등의 테마와 공연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름도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흡사 경기도 외곽의 성(?)처럼 지어 놓은 모텔들 처럼... 꽤나 그런 모텔들을 경멸했었는데... 라스베가스는 엄청난 돈과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한 경기도 모텔의 확장판이랄까... 동양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신분 때문일까 서울의 호텔들이 주는 위압감 없이 그런 저런 호텔들을 배회하며 구경하며...

항공료와 숙박비는 회사에서 실비로 정산하고... 출장비로 받은 720 불을 모두 사용하고 왔습니다. 원화의 평가 절상을 막아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꽤나 외화 낭비를 한거죠... 구국의 충정으로...

한국에서는 평생 하지 않았던 것들을 했습니다... 낮에는 주로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저녁에 돌아 다녔습니다. 저녁 식사는 20 불에서 40 불 사이에서 여기 저기 호텔 부페와 레스토랑에서...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0"라는 서커스 공연을 100 불에 보고... 물을 이용한 무대 장치의 대단함에 경탄은 했으나... 서커스라는 것이 우리 사람들 정서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네의 미술 작품을 15 불에... 귀에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막대기(?)를 대고 나름대로 우와한 자태를 뽐내며... 유명한 사람들의 실물 모형을 전시한 곳을 15불에... 조디 포스터를 비롯한 유명한 언니들 인형하고 팔짱끼고 사진도 찍었고... 카지노 그건 돈 먹는 하마더군요...

그리고 205 불에 그랜드 캐년을 구경했습니다... 고철이나 다름없는 경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멀미가 나서 고생했습니다... 크더군요... 그랜드 캐년... 한 쪽의 절벽은 이국적 경치를 한쪽은 숲풀은 흡싸 한국의 산을 옮겨 놓은 듯이 친밀감과 경외감이 교차하던 공간이 그랜드 캐년이었습니다.

귀여운 아줌마가 꾝 보자던 쇼걸을 아쉽게(?) 보지 못했고... 빅슛도 다행히 타지 않았습니다... 라스베가스는 영화 상의 이미지인 환락과는 조금은 달라 보이더군요. 의외로 차분한 "스트립" 거리에 귀여운 바람난(?) 아줌마는 "Where is 환락?"을 외쳐야 했으니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미국에 대해 받은 느낌은 너무 익숙해서 이상할 정도의 친숙함(한국 사회의 서구화로 인한)과 한겨례 21에 실린 이정우 수석의 인터뷰 기사 내용의 오버랩이랄까... 영어를 구사 하지 못하는 멕시칸은 스트립 거리에서 에스코트 걸과 콜걸 전단지를 돌리며 삶을 영위하고... 흑인이나 (관광객이 아닌) 동양인은 단순 서비스 업에 종사하는... 그리고 관광객의 대부분은 백인...

그랜드 캐년에서 돌아오는 경비행기에서 바라본 라스베가스 야경은 아름다우면서 생각보다 무척 크더군요... 그러나 스트립 거리는 전체의 1/100 정도... 99가 1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

가끔은 귀여운 아줌마가 절 언니라고 부릅니다... 절 보고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다며... 하지만 돌아오는 LA 공항에서의 계속되는 쇼핑에는 약간의 투정도 세어 나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최민식이 나온 "꽃피는 봄이 오면"을 잔잔하게 응시하며 떠나 왔습니다. 이번 겨울이 가면 꽃피는 봄이 오겠지요... 비행기 사이드에 아줌마랑 앉아 왔습니다. 좌석 하나가 차지 않아서 편하게... 귀여운 아줌마도 지쳤는지 팔걸이를 올리고 옆으로 누워 오더군요... 내 무릎을 빌려 주고 싶었지만... 다음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하고 가야 겠습니다... 긴 비행기 여행에서 무릎 혹은 어깨를 빌려주고 싶고... 빌려받고 싶고...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일찍 깬 새벽 호텔 방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 TV 리모콘에만 의지하기에는 서러우니까... 2005 년 닭띠에는 연애를 해야 겠네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사실혼 관계인 파리의 연인을 제외한다면 Big Brother가 공인하는 첫번째 씨알 커플인가요... 맞나? 벌써 저도 후배들 결혼식에 다녀야 하는 군요... 선배들이 결혼할 때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말.... 후배들에게는 즐거운 악담 처럼 해야 겠네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미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