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거꾸로 매달리기

군대 이야기

김승환2015-08-01

1995년 8월 1일

20년 전 오늘(2015년 8월 1일) 군에 입대했다. 대학 동아리 선배 두 명의 배웅을 받으며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대했다. 며칠 뒤 철원 신교대에서 훈련병 생활을 시작했다. 자대배치는 비무장지대를 담당하는 사단 수색대(훈련이 힘든 곳이 아니었다. 지리적으로 특이한 곳이어서 이야깃거리는 많다)였고, 그곳에서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군대갔다 와야 사람 된다?

요즘도 입대를 앞둔 사람이 이런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 이 말이 틀리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군대가 사회보다 여러모로 낫던 시절(끼니를 거르지 않고 기술을 배울 수 있던)이 있었다. 물론 내가 군대에 가던 20년 전엔 분명히 틀린 말이었다. 20년 전에 이미 사회가 군대보다는 월등히 나았다.

나에게 군대는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곳이었다. 몸과 맘 다치지 말고 갔다 오기를 희망했고, 그렇게 돼서 다행이다.

1997년 9월 25일 전역

20년 전 육군 복무 기간은 26개월이었다. 1일에 입대했고, 그 시절 전후로 복무 기간에 변화가 없었기에 전역일 계산은 쉬웠다. 1997년 9월 30일이면 26개월을 채우게 된다. 하지만 전역 예정일은 8월 2일이었다. 26개월에서 2일 더 복무하는 이유는 행정 편의에서 나왔다. 당시 전역을 목요일만 했기에 26개월을 채우고 돌아오는 목요일에 전역했다.

전역 몇 달을 앞두고 기쁜 소식을 들었다. 전역일이 예정일보다는 1주일 빠르고, 26개월에 5일 모자란 9월 25일로 결정되었다는 거다. 그때 함께 들은 속사정은 이렇다. 어떤 군인이 말년 휴가를 나가 사고를 쳤다. 큰 사건이었는지 군사 재판까지 가야 했다. 다행히 사고를 친 날은 26개월이 지난 날이었다. 군사재판보다는 사회에서 재판을 받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그는 자기 신분이 군인이 아닌 민간이라고 주장했다. 그 주장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군은 다시 행정 편의적 발상으로 전역일을 1주 앞당겼다.

얼마 뒤 요일 상관없이 26개월이 되는 날에 전역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IS를 만나다.

군대에서 맞지도 때리지도 않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가해자나 피해자로 오랫동안 기억될 가혹 행위도 없었다. 같은 시절 같은 중대에서 군 생활을 했던 사람이 나와 같지는 않았다. 같은 중대 다른 소대에는 구타와 가혹 행위가 있었다.

내가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만기 전역한 사람이 있다. 큰일을 볼 수 있는 화장실을 가려면 연병장을 가로질러 멀리 가야 했다. 전역을 앞둔 그가 나를 불러 같이 가자고 했다. 같이 있었던 시간이 짧았기에 그날 화장실에 같이 간 것 외에 그와의 추억은 없다.

뜬금없이 그는 자신이 IS라고 말했다. 지금은 IS가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를 지칭하지만, 그때는 국제사회주의자(International Socialist)를 의미했다. 후자도 낯설었지만, 약자의 풀이는 알고 있었다. 며칠 뒤 IS는 전역했다.

내가 몸담은 소대 이등병은 책과 신문을 내무반이나 식당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같은 중대의 다른 소대 이등병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IS가 만든 거라는 걸 알았다. 구타도 그가 멈췄다고 한다.

자칭 사회주의자인 그가 만든 해방구에서 난 편안한 군 생활을 했다. 우락부락한 얼굴과 큰 덩치가 생각날 뿐 이름도 모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게 고맙다.

빵모자 전투모

지금 군인은 베레모를 쓰지만 20년 전에는 챙 모자를 썼다. 사단 신교대에서 만난 조교와 기간병이 쓰는 모자와 달리 훈련병이 쓰는 모자는 볼품이 없었다. 의정부 보충대에서 받은 모자를 아무리 만져봐도 조교가 쓰는 모자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 모자를 빵모자라고 했다. 조교나 기간병이 쓴 모자는 군 납품용이 아닌 밖에서 만든 모자였다. 자대 배치를 받고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병장 하나가 외박 나가는 사람에게 내가 쓸 모자를 부탁했다. 병장은 내 빵 모자를 버리고 그 모자를 주었다.

당시 훈련병을 제외한 군인 대부분은 모양새가 나는 사제 모자를 썼다. 사제 모자 가격은 오천 원이었다. 한 해에 20만 명이 새로 사제 모자를 산다고 생각하면 20억 정도가 된다. 이 빵모자가 내가 기억하는 군대의 불합리를 상징한다. 처음부터 사제 모자를 지급하면 될 것을 하고 생각했다. 군에서 지급하는 대부분의 보급품이 비슷하다. 장갑, 로션, 속옷, 귀마개, 내복 등을 어머니에게 부탁해야 했다. 하루 일당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의무 복무임에도,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을 군인 가족이 짊어져야 했다.

막상 내가 병장이 되었을 때 전입한 이등병에게 사제 모자를 사주지 않았다. 위에서 사제 물건을 사는 걸 금지했다. 빵모자를 쓰고 온 사단장의 볼품 없음이 기억난다.

폭우

봄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여름에는 제초작업, 가을에는 싸리 빗자루를 만들고 새끼를 꼰다. 그리고 겨울에는 눈을 쓴다. 폭우가 모든 걸 비틀었다.

1996년 7월 엄청난 폭우로 철원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폭우 당시 우리 소대 전체는 휴가 중이어서 폭우 자체를 경험하지 않았다. 휴가 복귀하는 버스에서 바라본 철원은 엉망이었다. 물살에 뽑힐 겨를도 없이 부러진 전봇대가 지금도 아른거린다.

많은 시설과 도로가 유실되었다. 제초 작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정도로 다른 작업이 많았다. 작업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 밥을 먹자마자 저녁까지 작업했다. 저녁에는 폭우로 새롭게 만들어진 개울에서 씻고 취침 점호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다.

지난해까지 늘 했던 일을 하지 못했다. 이등병 때는 열외가 돼서 싸리 빗자루를 만들지 않았고, 상병 초에는 폭우 작업으로, 병장 때는 싸리 빗자루를 만들기 전에 전역해서 하지 못했다. 상병 때 제초기를 돌려보지 못해,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다음 해 여름에 제조기를 메고 쩔쩔맸다.

폭우로 지뢰 사고가 여럿 있었다. 축구를 하며 몸을 부대꼈던 사람 한 명이 크게 다쳤던 게 지금도 안타깝다. 지뢰가 터진 위치에서 경비를 서다가 점심 먹기 위해 식사 장소로 옮긴 후 바로 지뢰가 터졌다. 대부분 경비를 섰던 곳에서 식사하는데 그날은 어떤 이유인지 멀리 움직였다. 땅속 깊이 묻혀있던 대전차 지뢰가 터지며 낸 괴성과 작은 버섯구름이 기억난다.

살수대

철원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이지만 경기도에 가깝다. 그래서 1996년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건이 종료된 후 어떤 일로 대대를 갔는데, 거기서 살수대 훈련 모습을 보았다. 태권도와 특공무술 실력으로 명성이 높았던 부사관 한 명이 복수를 위해 살수대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다. 실제 훈련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상급부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사관 한 명이 직업군인도 아닌 나와 같은 사람 중에서 몇몇을 뽑아 살수대를 만들어 훈련했다. 이 훈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람을 만난 곳이 군대였다. 군대였기에 지역과 직업을 비롯해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을 만났다.

빵 만드는 회사 아들

빵이 매일 나왔다. 가운데 팥이 있고, 스콘 느낌의 빵이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이 빵이 가혹 행위를 일으켰다. 선임자들이 먹지 않고 이등병 관물대에 던져 넣었다. 내가 이등병 시절이었는데, 이런 행위가 여러 이등병 중 특정인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내 것을 포함해서 2~3개 정도였는데, 그는 5~6개까지도 먹어야 했다.

이 행위는 간단하게 없어졌다. 나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사람 중에 유명한 식품회사 사장 아들로 알려진 이가 있었다. 대대장 옆에서 편하게 군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짐작건대 그 사람으로 인해 갑자기 빵이 질이 높아졌다. 그 뒤로 이등병 관물대에 빵을 던지는 일은 없어졌다. 빵이 맛있어지자 대부분 어디 남는 빵 없나 찾고 다녔다.

나와 식품회사 사장 아들과의 복무 기간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가 전역한 후 빵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군대 내 가혹 행위를 없애는 방법 하나가 군인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아름다운 자연

휴가 복귀할 때 버스에서 내려 휴전선 바로 앞에 있는 부대에서 맞는 공기의 신선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사람 손이 미치지 않은 비무장지대 안의 9월 철원 평야의 녹음와 오성산을 처음 마주쳤을 때의 가슴 막막함이 잊히지 않는다.

비무장지대 철원 오성산 부근의 풍경. 전쟁과 이후 자연이 살아나는 과정의 역사가 남아 있다. 사진=녹색연합 (한겨레에서 재인용)

낮 하늘을 수놓은 많은 철새와 독수리. 밤하늘을 빽빽이 채운 별자리(6개월 넘게 밤을 새웠기에 더 그렇다.)가 계절을 달리하며 일으킨 아름다움을 전역 후에는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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